빅 포니 | Big Phony
     An Introduction to BIG PHONY
     
   
 
   
발매일 : 2011.10.14  
장르 : POP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우리를 얼마나 설레게 하던가.
빅 포니의 [An Introduction to BIG PHONY]앨범은 그런 느낌으로 우리에게 스며든다.
빅 포니(Big Phony)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마치 오랜 기억의 서랍을 연 것처럼 엘리엇 스미스(Elliott Smith)가 떠올랐다. 뮤지션에게 자신의 목소리가, 자신의 음악이 다른 뮤지션, 그것도 적지 않은 존재감을 가진 선배 뮤지션을 연상시키게 한다는 건 득보단 실일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색의 스펙트럼에서 자신만의 색이 아닌, 이미 다른 이의 이름으로 된 색을 선택한 기분일지 모르니까. 듣는 이 역시 연상된 다른 뮤지션의 음악이 자신에게 준 정서와 시간, 추억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마치 마주보고 앉은 연인의 낯익은 얼굴에서, 지나간 시간의 다른 사람을 읽어내는 것처럼.
하지만 빅 포니의 앨범을 거듭 반복해서 듣다 보면, 우리는 점차 지금 이 순간, 이곳으로 돌아와 그의 앞에 서게 된다. 푸른 밤, 잎사귀를 스치는 바람 같은 목소리와 벽난로 앞에 앉아 듣는 것처럼 따뜻한 기타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옛 연인과의 ‘닮은’ 부분들 때문에 만나게 되었던 사람에게서 새로운 부분들을 발견하며 다시 사랑에 빠지는 기분과 비슷하다. 그 사람만의 작고 고요한 우주를 발견하고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우리를 얼마나 설레게 하던가. 빅 포니의 음악은 그런 느낌으로 우리에게 스며든다.
로버트 최(Robert Choy)가 본명인 그는 어렸을 때 형의 기타를 몰래 연주하며 음악의 꿈을 키웠다. 뉴욕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열네 살 때 가족들이 로스앤젤레스로 이사하면서 홀로 뉴욕에 남아 예술학교에 다니며 정식으로 음악 교육을 받는다. 하지만 종교적 신념도 강했기에 이후 목회에 뜻을 품고 신학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 품고 있던 음악에의 갈망은 결국 꿈의 이정표를 음악으로 돌려놓았다. 졸업 후 그는 가족들이 살고 있는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해 작곡과 공연에 매진했고, 특유의 섬세하고 온화한 어쿠스틱 음악으로 캘리포니아 인디씬에서 두터운 매니아층을 형성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앨범은 2005년 데뷔앨범 [Fiction & Other Realities]를 발매한 이래 현재까지 총 네 장의 정규앨범을 발표하며 음악 팬들의 마음을 보듬어온 빅 포니의 노래들 중 그만의 색깔과 체온을 보다 잘 담아낸 12곡을 모은 것이다. 타이틀곡인 ‘Short Intermission’은 마치 밤기차를 타고 멀리 떠나는 이의 마음을 뒤따르는 듯한 기타 도입부부터 마음을 사로잡는다. 뺨에 와닿는 새벽공기와 검은 거울이 되어 나를 비추는 차창, 흩어진 말들과 어긋나는 마음을 모두 담아낸 듯한 이 곡은 빅 포니 특유의 감성이 잘 녹아든 동시에, 앨범의 첫 트랙으로서 마치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기분이다. 이밖에도 슬라이드 기타와 함께 나직하게 울려 퍼지는 보이스가 인상적인 ‘Words That Define’, 화사한 기타 리프와 맑은 음성이 조화를 이루는 ‘I Love Lucy’, 햇볕 가득 드는 카페테라스에 앉아 휘파람 같은 바람소리를 듣는 듯한 ‘Girls Like You Don`t Go For Guys’ 등이 인상깊다.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오로지 작곡과 공연에 매진하며 자신만의 걸음으로 캘리포니아 인디씬을 가로지르는 한국계 싱어송라이터 빅 포니의 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빅 포니의 음악은, 시간으로 치자면 새벽이다. 도시의 야경이 빛날수록 마음은 빛을 잃는, 누군가 필요하지만 결국은 스스로를 혼자 두게 되는 그런 밤. 멀리서 동이 터오며 여전히 잠 못 들고 있는 이들의 방에 켜진 불빛이 희미해지는 시간. 밤을 지샌 피로와 어떤 종류의 충족감, 노곤한 슬픔이 교차하는 그 지점에서, 그의 음악은 별처럼 빛난다. 거기엔 또한 형의 기타를 몰래 연주하며 첫사랑처럼 음악에 빠져들던 소년의 설렘이, 가족과 떨어져 홀로 지내며 제 안에 못 다한 말들과 부르지 못한 노래들을 쌓아갔을 소년의 외로움이 녹아 있다.
그러니 낡고 포근한 스웨터 같은 그의 목소리는, 홀로 지샌 당신의 밤을, 식어가는 마음을, 따뜻한 손으로 덮어줄 것이다. 밤새 식은 대지를 다시 달구며 떠오르는 태양처럼. 새로운 아침엔, 새로운 위로로.

     
   
   
  DISC1
 
  • 1. Short Intermission
  • 2. Words That Define
  • 3. The Bully
  • 4. I Love Lucy
  • 5. Someone
  • 6. Girls Like You Don't Go For Guys Like Me
  • 7. Here's to the Laughable State
  • 8. Dying Unaware
  • 9. Holiday Bust
  • 10. Parade In My Head
  • 11. Parable
  • 12. So You Know It Complete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