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추웠던 겨울도 끝자락에 닿았다. 쌓였던 눈이 녹고, 대낮에도 목을 움츠리고 다니게 만들던 칼바람도 조금씩 날이 느슨해진다. 겨울보다는 봄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는 이때. 무겁던 겨울의 찬공기를 털어버리고 산뜻한 봄바람의 기운을 느끼게 해줄 소녀 피아니스트 린지(LINZI)의 피아노 선율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아직 앳된 얼굴의 린지(본명 유하영)는 올해 열여덟살이다. 핑크색 매니큐어와 강아지를 좋아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말 그대로 천상 ‘소녀’다. 하얀 꽃이 잘 어울리고 눈이 반짝이는 소녀다운 외모 때문에, 자칫 그 음악마저 아기자기하고 풋내 날 것 같다고 오해하기 쉽지만, 막상 음반의 트랙들을 하나하나 들어보면 깔끔하고 힘이 느껴지는 건반 터치가 인상적이다. 린지는 2011년 올해 가을, 미국 버클리 음대(Berklee College of Music)에 장학생으로 입학 예정이며, 1번 트랙에 수록된 [Monologue]는 이미 15세때 작곡했을 만큼 이미 연주와 작곡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왔다. 데뷔앨범 [Ruby Rises]는 이 앨범의 작,편곡가이자 프로듀서로 참여한 재즈 피아니스트 ‘메이 세컨’을 16세때 만나 피아노, 작곡, 보컬 등 다방면에 걸친 지도를 받으며 멀티 뮤지션으로서의 자질을 키워오며, 오랜 준비 끝에 내 놓은 음반이다. 그에 걸맞게 ‘monologue’ ‘얼음꽃’ ‘love is sweet’ 3곡에 직접 작곡자로 참여하기도 했으며, 단순한 재즈음반이 아닌 뉴에이지, 팝 등 다양한 무드를 느낄수 있는 곡들을 수록하여 재즈 매니아가 아닌 사람들도 기분좋고 편안하 게 들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린지의 자작곡인 1번트랙 ‘Monologue’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프리스타일 연주가 인상적이다. 2번 ‘Shining in the Sky’는 퓨전밴드 ‘모이다’의 기타리스트 박경호의 곡으로 린지의 그루브있는 연주와 모이다 밴드의 세션으로 한층 더 완숙미있게 연주되었다. 타이틀 곡이기도 한 3번 good day는 메이세컨의 3집의 기분 좋은 날의 밴드편곡으로, 스윙이 잘 살아있는 경쾌한 곡이다. 재즈 기타의 선율과 어우러져 비오는 날을 저절로 떠올리게 만드는 4번 ‘Rain Dance’ 와, 현악기와 함께 연주하여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낸 5번 얼음꽃은 뉴에이지의 감성적이고 고요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6번 ‘별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고요하다’는 세션들과의 호흡으로 더욱 고조된 느낌의 슬로우 템포 재즈곡이다. 7번 ‘달의 꿈’은 재즈 베이시스트 전성식의 곡을 다시 편곡하여 밝고 경쾌한 느낌을 살렸다. 경쾌한 템포와 여성보컬의 목소리로 사랑에 빠진 소녀의 마음을 노래한 일렉트로닉 팝 분위기의 8번 ‘Love is sweet’와,1번 트랙 ‘monologue’를 랩퍼 MQ&MATILDA가 피쳐링 하여 팝의 느낌으로 재해석해서 수록한 9번 트랙까지. 다양한 분위기의 곡들을 수록했지만, 산만하거나 흐트러짐 없이 무게감 있는 건반 터치를 들려주는 린지의 피아노 연주는 한결같다. 아직은 호기심 가득하고 당돌하기도 하지만, 음악에 대한 애정과 진지함이 엿보이는, ‘소녀답지만 소녀답지 않은’ 린지만의 색깔이 묻어있는 첫번째 앨범 [Ruby Rises]. 재즈가 조금 어렵게 느껴지거나, 혹은 뉴에이지나 파퓰러한 연주곡 외에도 신선한 느낌의 연주음반을 원했다면, 2011년 봄,린지가 들려주는 편안하면서도 다채로운 음색에 귀를 기울여도 좋을 것이다.